풍경과 좋은 글

성모승천 대축일

늘~ 푸른 2010. 8. 24. 14:56

 

 

8월 15일 성모 승천 대축일-루카 1장 39-56절

http://www.catholic.or.kr/

 

“당신은 여인들 가운데에서 가장 복되시며, 당신 태중의 아기도 복되십니다.”

 

<오직 예수님만을>

 

 

     아침미사를 마치고 잠깐 마당으로 나섰는데, 잠시나마 참으로 특별한 광경이 제 눈앞에 펼쳐지고 있었습니다.

 

    여기 저기 떠돌다가 저희 집에 정착한 슬기라는 고양이 녀석이 까치 한 마리에게 슬슬 쫓겨나고 있는 광경이었습니다. 몸무게나 공격성이나 여러 면에서 게임이 안 되는 까치인데, 아주 가까운 거리까지 다가가서 ‘깍깍’ 있는 힘을 다해 외치며 고양이를 공격하고 있었습니다. 결사적인 까치의 공격 앞에 고양이는 슬슬 뒤꽁무니를 빼더군요.

 

    도대체 왜 그랬을까, 생각에 잠겨있었는데, 잠시 뒤에 해답을 찾았습니다. 슬기라는 녀석이 까치집을 습격한 것입니다. 그리고는 그 안에 들어있던 부화 중이던 까치 알을 슬쩍해서 홀랑 까먹어버린 것입니다. 한 발 늦게 그 사실을 확인하고 나서 너무나 황당했던 어미 까치는 그렇게 목숨까지 걸면서 슬기를 뒤 쫒아갔던 것입니다.

 

    어미 새들의 모습을 지켜보면서 가끔씩 깜짝 깜짝 놀랄 때가 많습니다. 정말 극진한 모성입니다. 새끼들이 알에서 부화하고 나면 그 뒤로는 완전히 자신을 잊습니다. 하루 온 종일 목숨까지 걸어가며 새끼 새들을 먹여 살립니다. 혹시라도 침입자가 새끼들을 공격하지 않을까 노심초사하면서 그렇게 힘든 하루하루를 보냅니다.

 

    오늘 우리가 기억하는 성모님 역시 아기 예수님을 잉태한 이후의 삶, 별반 다를 바가 없었을 것입니다. 아기 예수님을 품에 앉은 성모님의 마음은 다른 어머니들보다 더욱 특별했을 것입니다. 더 조심스러웠고, 더 노심초사했고, 더욱 많은 신경을 쓰셨을 것입니다.

 

    아기 예수님이 날로 성장해나가는 모습을 순간 순간 지켜보신 성모님, 혹시라도 나로 인해 조금이라도 잘못되면 어떡하나 걱정이 태산이었을 것입니다.

 

    더구나 예수님의 유년시절, 시절이 만만치 않았습니다. 헤로데의 유아 박해 사건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집트로 피난까지 갔습니다. 잠잠해지니 또 다른 터전을 찾아 돌아왔습니다. 지금도 ‘이사’하면 깝깝한 생각이 먼저 드는데, 그때 당시 아기 예수님으로 인해 여러 번 터전을 옮겨야 했던 성모님의 고생은 이만저만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성모님은 늘 묵묵히 아기 예수님을 위해 엄마로서의 최선을 다했습니다. 아기 예수님이 있는 곳에 늘 계셨습니다. 필요한 것이 있을 때 언제든지 응했습니다. 잠시도 떨어져있지 않고 예수님 주변만을 맴돌며, 예수님만을 바라보고, 예수님만을 사랑하고, 예수님만을 연구하고, 예수님만을 관상했던 예수님의 사람이 바로 성모님이셨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했던 성모님의 삶이 힘들기만 했을까요? 절대로 그렇지 않았을 것입니다. 구세주 하느님께서 나를 통해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구세주 하느님을 직접 내 팔에 앉았습니다. 구세주 하느님께 직접 젖을 먹였습니다. 구세주 하느님을 직접 내 손으로 키웠습니다. 구세주 하느님께서 내 도움에 힘입어 무럭무럭 성장해나갔습니다. 이것보다 더 큰 행복이 어디 있겠습니까?

 

    물론 십자가 아래 서계시는 참혹함과 돌아가신 예수님을 당신 팔로 앉는 괴로움도 겪으셨지만, 고통보다는 기쁨이, 시련보다는 축복이 훨씬 많았던 성모님의 생애였습니다.

 

    오늘 성모님의 승천은 우리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정말 큽니다. 나자렛의 시골 처녀 마리아, 참으로 보잘 것 없는 인생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여인이 지금은 세상 모든 사람들을 내려다보며 따뜻한 위로를 건네주시는 하느님의 어머님으로 존재하고 계십니다.

 

    예수님과 숱한 성인성녀들과 함께 우리를 내려다보시는 성모님께서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사랑하는 아들딸들아, 나를 보거라. 그저 예라고 대답하고, 그저 묵묵히 견뎌내며, 늘 예수님 주변을 떠나지 않고, 그분 얼굴을 바라보며, 그분 얼굴을 관상하며, 그렇게 살아온 내 얼굴을 바라 보거라.”

 

 

               †살레시오회 수도원 수련원장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